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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제리와 프랑스,
    카테고리 없음 2022. 1. 24. 06:15

     

    알제리-프랑스, 과거사를 둘러싼 외교 마찰 아쿨람 베르카이도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에비앙 협정' 60주년을 몇 달 앞둔 시점에서 프랑스와 알제리 간의 외교적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식민지 역사 문제가 논란이 되는 반면 알제리 정권 개편으로 프랑스 당국은 혼란에 빠져 있다. 통상 외교 마찰의 여파에 끄떡없던 양국의 경제 안보 교류도 1970년대 이후 처음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흔들리고 있다.

    일시적인 외교적 마찰일까. 지속적인 관계 악화인가? 르몽드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알제리 양국 관계에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10월 2일 알제리 정부는 협의를 위해 프랑스 주재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했다. 임마누엘 매클런 대통령의 무책임한 발언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9월 30일 프랑스 대통령은 알제리 독립전쟁(1954~1962) 참전용사들의 후손을 엘리제 궁으로 초청했다. 이 자리에서 "알제리는 과거사의 잔재 위에 세워진 국가이며 '정치·군사제도'에 의해 통치된다"고 말했다. 또 위정자들이 써내려간 알제리의 식민지 역사는 프랑스에 대한 증오담론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 식민지 이전에 알제리가 과연 국가로 존재했는지 의문이라는 발언을 해 현재의 알제리 정권 반대파를 비롯해 알제리 국민의 심기를 건드리기도 했다. 이에 따라 알제리 정부는 주프랑스 대사를 소환해 말리에서 발칸 작전(Operation Barkhane)을 수행하는 프랑스 군용기의 영공 통과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양국의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중 가장 심각했던 갈등 사례는 1971년 2월 우아리 부메디앵 대통령의 탄화수소 국유화 결정 때문에 빚어진 외교적 마찰일 것이다. 이후 수년간 외교 갈등과 프랑스의 보복조치(알제리 와인 수입 중단 등)가 이어졌다. 알제리 국민은 식민지 시절 자국 이민자들이 프랑스에서 겪은 인종차별과 폭력, 살인에 침묵하는 프랑스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4). 1975년 4월 지스카르 데스탱(Valery Giscard d'Estaing) 프랑스 대통령이 알제리 독립 이후 처음으로 수도 알제를 국빈 방문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양국 관계가 개선되기 시작한 것은 1981년 5월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당선 이후였다.

    ●식민지배의 긍정적 역할?

    그러나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 종종 발생했다. 외교적 갈등의 불씨는 주로 프랑스에서 먼저 타올랐다. 일례로 프랑스 식민지배의 과거사뿐 아니라 2005년 프랑스 의회와 우익대신이 제안한 식민지배의 긍정적 역할에 관한 법안 논의를 들 수 있다.(5) 수개월간 논란이 계속되자 독립전쟁 참전용사를 비롯해 '혁명위원회'의 일원이었던 알제리인들이 132년에 걸친 알제리 식민통치에 대한 공식 사과를 프랑스에 요구했다.

     

    이어지는 기사는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에비앙 협정' 60주년을 몇 달 앞둔 시점에서 프랑스와 알제리 간의 외교적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식민지 시대 역사 문제가 논란의 대상이 되는 반면 알제리 정권 재편성으로 프랑스 당국은 혼란... www.ilemonde.com  <르몽드/마니에르 구독 신청> http://www.ilemonde.com/com/kd_experience.html <르몽드 구독 체험> http://www.ilemonde.com/com/kd_experience.html <12월호 기사> 인터넷신문 ilemonde.com #르몽드디플로마티크 #르디플로마티크 #르디플로마티크 #르 #르몽드 #대안 #마니에르 #마니에르 #언론지 #월간지 #한국언론지 #한국언론지 #한국언론지 #한국언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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